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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종말
​헤이 씀.

  익히 알려진 명계의 음식이 석류가 아닌 석류로 빚어낸 한 잔의 술이었다면? 페르세포네가 봄의 터전에 발을 딛을 수 있었을까. 코웬의 젊은 가주였던 이는 이제 와 의미 없는 가정을 떠올렸다. 머리 위로 씌워진 관이 잠시 기울어졌다가도 이내 제 자리를 찾아 올바르게 씌워졌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마냥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운명의 실이 비틀리는 것은 인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신의 손짓이고 만다. 그저 꼬여있는 실이나 조금 풀려고 끝과 끝자락을 잡아다 몇 번 꼬았던 것이 코웬의 젊은 가주를 절벽 아래,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 뱃사공 카론이 모는 강물의 끝자락보다도 더 아래로 처박히게 했다. 흔히 죽음이라 불리는 그 물결에 쓸리고 쓸리다 코웬은 무력함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우는 것마냥 눈을 겨우 뜨게 되었다. 그러나 코웬은 제가 상상하고 익히고 그렸던 장면이 아니라 의아하게 눈만 깜박였다.

  벽을 타고 울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며 이제껏 쓸려오며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이 지상 위의 존재가 아니라 지하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게 된 연유는 알 수 없어도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어떠한 길임을 역시 깨달았다. 영리한 코웬의 젊은 가주는 그간 익혀왔던 지식마저 물살에 쓸려가게 두지 않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순순하게 꼬여진 길을 따라 걸을 생각은 없었다. 명계의 왕을 만난다면. 혹은 그의 가신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그 무력감 속에서도 몇 가지의 대책을 세우는 영리한 가주였으나, … 앞서 말했듯이 신의 존재 앞에 인간은 종종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우선 본인의 몫으로 놓인 왕좌에 앉아 빛보다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존재를 흔히들 인간의 입을 빌어 들려오는 '그' 명계의 왕과 잇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그를 마주한 이후부터 이곳을 벗어나야 할 곳으로 잇는 것 또한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되어야 할 두 가지 사실관계가 흔들리며 애써 세웠던 방안을 되돌리고 다시 세워보다 이내 나머지도 모두 잊고서 코웬의 젊은 가주는 명계의 왕이 아직 채 내밀지도 않은 석류를 이미 베어먹은 양 굴었다.

  인계에서도 종종 이유 없이 충동이 차오르던 날들이 있었다. 순응이 자신의 몫인 양 굴던 이가 내놓는 거부와 되물음이 얼마나 그들에게 혼란을 안겨주었었는지도. 그 심술궂은 심지가 어째서 지금에야 다시 올랐는지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코웬의 젊은 가주는 눈앞의 이가 주는 것이 어둠이라면 기꺼이 먹을 생각이었다. 다만 내어진 것만을 베어 먹는 것은 취향이 아닌 탓이라, ...


  그는 인계에서나 먹힐 법한 자신의 수단부터 사용했다. 빛이 내리는 아름다움과 바다를 품은 눈 아래 무엇이 닿을까 싶으면서도 때로는 유일함이 그럴듯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해하나 어리숙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어투는 한껏 다정하게 그러나 어미는 단호하도록. "이곳은 어디입니까? 알 수 없이 길을 잃었습니다." 라고 첫 마디를 던졌다.

  이어지는 통성명과 제게 벌어진 상황의 전개에 다소 당황스러움을 숨기지는 못했으나 주변의 어둠이 무의미하도록 스스로 찬란한 이를 바라보며 코웬의 가주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의 끄덕임과 수긍이 자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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