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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것은

떠나온 지구를 바라보는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지.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나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매듭지었다. 

어제, 두 시간 사십오 분 오십 초. 

그제, 두 시간 삼십삼 분 십칠 초.

오늘, 세 시간 오십구 분 삼십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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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불의 냄새가 났다.

깨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향이었다.

저와 에블린을 제외하면

세상의 그 누구도

이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다. 그리고 에블린은 자신을,

자신만은 특별하게 대했다.

그건 또 다른 감정을 일으켰다.

온전한 둘만의 비밀로 남기고 싶었다. 시체조차 모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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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시선이

무엇을

좇고 있는지를 안다.

구태여 캐묻지 않아도

저 단호한 말투에 담겨있는 의미를

모를 수가 없었다. 

가볍게 흔들리는 수면을

눈높이에 맞춰 들어올리자

어떤 확신이 스쳐 지나갔다.

삼키자마자

전부

토해내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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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라. 이것은 나의 피이니라.

이것은 구원도, 저주도, 비밀도

아닌 죗값이니라.

나는 죽음을, 너는 삶을 

벌로 받았으니

십자가를 대신 지어줄 이는

이 땅에는 없느니라.

살아가며 눈물 흘릴 일이야 생기겠지마는

괜찮았다.

우리는 무고한 열아홉이었고,

흘린 눈물을 닦아내줄 사람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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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된 믿음과 허울뿐인 구원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았다.

여기에, 빛이 있었다.

그리 믿었다. 

울렁이고 넘실대고 아득한 사어들.

그 가운데 하나의 길로

빛나는 대화가 있다.

무언으로 범람하는 그 앞에서

예찬하는 최후의 선포 같이,

혹은 최초의 명령 같이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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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녀는 제 입에

붉은 과실주를 머금고

사내의 입술에

피와 같은 맹세를 한다. 

머리 위로 씌워진 관이

잠시 기울어졌다가도

이내 제 자리를 찾아 올바르게 씌워졌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마냥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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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쯤 말야.

우리는 네가 얼마 안 있어

죽을 걸 예감했었지.

그리고 그는 라몬이 오늘 밤 역시

같은 침대에서 잠들어줄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전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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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 관계. 

그럼에도 이 잔을 마다하지 않는

뜨거움.

내게는 없는 선명한 색이

나를 휘어잡았다.

시야에 아로새겨지듯 선연한

붉은 네 머리카락이,

제 것과는 다른 짙은 보랏빛 시야에 희끗한 제가 담겨 너울거릴 때마다

알 수 없는 충족감이 차올랐다. 

무슨 생각을 해?

어떻게 하면 내가

너를 절망하게 할까, 하는 생각.

칼리안 에우페베카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이 가장 끔찍했다.

이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는

그저 사랑조차도 불공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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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사랑은 언제나 뒤틀리고도 낭만적이지. 이미 독주보다 더한 독을 삼키고 있는데, 이걸 못 마실까.

 

사랑하는 칼.

그는 유독 저를 사랑한다는 이들에게 박했고,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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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모든 걸 잃어버렸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어.

나한테 없다고 말이야.

대신 당신이 말하는 무엇이든 할 테니까, 너를 돌려달라고.

포도는 신의 뜻 받드는 자들의 피를 뜻하니. 

포도나무는 곧 당신들의 상징이랍니다.

세계의 뜻을 삼키세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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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4:18

그의 삶에서 추방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자신은 불청객이 되어 있었다. 프시케는 주변을 하나씩 제치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서는 발길이 바닥을 크게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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